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흥나는 마을 탐사대 후기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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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자 김혜숙
댓글 0건 조회383회 작성일 21-05-31 16:51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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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흥나는 마을 탐사대> 프로젝트,.....

 

모두들 이 길을 걸어 보았을 수도 있다. 단지 이 루트를 통한 길을 쭈욱 걸어보았을지는 모르는 일이다. 나는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처음 걸어 보았다. 흥나는 마을길,... 도래울 마을길이다.

 

두어 시간 남짓 집사람과 걸어본 것은 아주 오랜만의 일인 것 같다. 잠깐 잠깐 시장을 보러 가는 길을 제외하면언제쯤이였던가?’하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. 가족 여행을 하더라도 늘 아이들 챙기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만 생각이 난다.

 

96년 초에 결혼을 했다.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이겠지만, 늘 남의 집 귀한 딸 고생 많이 시켜 미안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. 길을 걸으며 손도 잡고 걸었다. 싫지 않음을 잘 알겠다. 미안함이 다 누그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이렇듯 오래도록 싫지 않음이었으면 좋겠다.

 

그렇게 <도당산 공원>을 처음 올라 보았다. <도당산> 공원이 <도라산>이였는지는 모르겠다.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곳에 살고 있던 석탄 이신의 선생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 300여명의 의병을 조직하였단다. 열악한 세를 과시하기 위해 밤에 횃불을 들어 산 주변을 돌도록 하고, 창릉천에 석회 가루를 뿌려 많은 군사가 있음을 계책을 하였다고 한다.

 

그 후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왜적과 교전을 하고 있을 때 왜적의 후방을 교란하여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끄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. 선생은 후일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.

 

현재 <도라산>의 지명은 그 당시 횃불을 들고 산을 돌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후일 <도래울>의 근원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.

 

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약 300 여 년 후에 우리는 또다시 일제강점기라는 36년 암흑의 시대를 맞아야 했다. 역사는 반복 된다고들 한다. 신채호 선생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.”라고 하셨다. 이렇듯 우리의 역사를 잘 알고 후일 다시는 같은 전례를 밟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.

 

이러한 석탄 이신의 이야기가 이케아 뒤편 기념관에 있다. <창릉천>은 한강으로 유입되는 중랑천, 탄천, 안양천과 더불어 4대 지류의 하나이다. 예전에는 물이 많이 흘러 물놀이를 많이 했다고들 한다. 지축역 앞에서 대야를 타고 한참을 내려오는 재미가 있었단다. 물도 제법 깨끗해진 듯 싶다. 자전거길에 그려진 화사한 분위기의 벽화, 의장대 수변공원은 우리마을의 랜드마크가 아닐까 싶다.

 

우중에도 불구하고 재잘대는 아이들을 이끌고 기념관을 방문하신 젊은 부모님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.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다.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할 것이고, 아름다운 강산, 역사와 문화를 잘 물려주는 세대가 되었으면 좋겠다.

 

스탬프길의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협찬과 후원을 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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